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탈가전화' 바람이 분 것은 오래전 일이지만 올해는 그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이미 CES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스마트폰은 유수의 글로벌 업체들이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며 그 규모가 훨씬 커졌다. 하드웨어는 이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웨어러블(착용형) 기기의 경우 스마트 워치로 대변되는 손목 위주의 제품 구성에서 벗어나 목걸이형·패치형·반지형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하며 웨어러블의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이와 더불어 스마트 기기와 연동된 무인항공기 드론·로봇·3D 프린터 등이 한자리씩 차지하며 CES를 명실상부한 신기술 경연장으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CES 최초로 독립 전시관을 구축한 드론은 구름 인파를 몰고 다니며 '핫 키워드'로서의 위상을 과시했다.

올해 CES 스마트폰 부문에서는 현존 최고 속도의 3밴드 LTE-A를 지원하는 LG전자 'G 플레스2' 외에 이렇다 할 신모델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영역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던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든 게 눈에 띈다.

TV 사업이 주력인 샤프는 퀄컴과 공동 개발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멤스(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이그조'를 채택한 태블릿 PC를 출품했고, 컴퓨터·노트북·반도체 등에 강세를 보여온 도시바도 창사 이래 첫 스마트폰과 태블릿 모델을 공개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한때 즉석카메라·필름 시장을 호령하던 폴라로이드와 코닥도 각각 자사의 첫 스마트폰·태블릿을 공개하며 '권토중래'를 모색하고 있다.

이들이 내놓은 제품은 모두 200∼400달러대의 보급형이다. 이는 올해 스마트폰 시장의 무게중심이 프리미엄에서 보급형으로 옮아갈 것이라는 일각의 시장 예측과도 맥을 같이한다.

화웨이·샤오미 등 중국계 제조사들이 공격적으로 세를 넓히고 있는 보급형 단말 시장에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신진 업체들이 이처럼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장 쟁탈전은 전례 없이 뜨거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그동안 프리미엄 전략으로 재미를 본 삼성전자와 LG전자로서는 전략 수정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CES를 통해 본 '한·중·일 스마트폰 삼국지'의 판세는 한국의 여전한 우세 속에 무서운 속도로 뒤쫓아오던 일본과 중국의 '숨 고르기' 정도로 요약된다.

일본·중국 업체들은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내놓기보다는 기존 모델의 버전 업데이트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3월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를 겨냥하면서 이번 CES에서는 '쉬어가는 코스'를 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마트폰이 사업자 확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다면 웨어러블은 '전신 시대'에 진입했다. 손목에 차는 스마트 워치 일변도에서 탈피해 부착 영역이 전신으로 확대됐다는 뜻이다.

프랑스 기업 에미오타(Emiota)는 착용자의 허리 사이즈에 맞춰 자동으로 조절되는 스마트 허리띠를 선보였고, 미국의 센소리아(Sensoria)는 운동량 등을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 양말을 공개했다.

일본 기업 로그바(Logbar)는 손가락 움직임만으로 주변 스마트 기기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반지를 내놔 주목을 받았다.

이밖에 스마트 깔창, 스마트 보청기, 패치형 심박측정기 등 다양한 제품이 쏟아져나오며 웨어러블 기술 진보의 속도를 가늠케 했다.

이번에 출품된 웨어러블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피트니스'다. 건강 증진에 관심을 쏟는 전 세계적인 추세와 맞물려 웨어러블도 건강보조 기구로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이들은 시장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시제품 성격이 강해 대중화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기기의 완성도도 아직은 상용화 수준에 못 미치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소비자에게 친밀하고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스마트 워치가 당분간 웨어러블의 왕좌를 지킬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애플이 올해 상반기 중 출시할 '애플 워치'도 손목의 우위를 점치게 하는 요소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번 CES를 통해 웨어러블의 다변화 가능성이 확인됐지만 대중이 스마트 기기를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착용 부위가 어디냐를 놓고 볼 때 스마트 워치의 아성을 넘어서기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웨어러블이 대세로 자리를 굳히면서 운영체제(OS) 경쟁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웨어'라는 웨어러블 전용 OS를 선보인 바 있고 애플도 애플 워치를 통해 '워치 OS'를 내놓을 전망이다. 여기에 공개 OS인 모질라 파이어폭스도 CES에서 기존 OS를 웨어러블 기기와 호환되도록 개발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끈다.'

이번 CES에서는 "전자기기 경쟁이 하늘로 옮아붙었다"는 말이 회자됐다. 무인항공기 드론이 수많은 인파를 끌어당기며 인기를 끌자 나온 얘기다. 일각에서는 올해 CES를 두고 "지상은 스마트카가, 하늘은 드론이 장악했다"는 말도 떠돌았다.

CES를 주관하는 미국가전협회(CEA)는 CES 역사상 처음으로 6천500㎡(약 1천966평) 규모의 드론 독립전시관을 마련, 30여개 드론 제조사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다양한 기능을 갖춘 제품을 선보이며 무인항공기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중국 DJI는 조종기의 디스플레이 터치만으로 풀HD급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는 신형 드론을 선보였고, 헥소 플러스(Hexo+)는 스마트폰으로 조종이 가능한 제품도 내놨다.

크기도 손바닥만 한 초소형 드론부터 방송장비로 쓸 수 있는 대형 드론까지 다양했다.

특히 이번 CES를 통해 글로벌 드론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강세가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는 "CES 참가 업체의 80%가 중국계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군사용 드론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상업용 드론 시장은 중국이 싹쓸이하는 양상이다.

한국에서는 벤처기업 바이로봇이 유일하게 CES에 출사표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의 드론 기술력은 세계 10위권으로 꼽히지만 아직은 기업 수나 성장잠재력 면에서 중국 등 선발국에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다.

CEA 측은 "CES에 첫 참가한 드론이 단박에 주역으로 등장했다"며 "내년에는 드론의 전시 공간을 더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CEA는 올해 글로벌 드론 시장 규모가 금액으로는 작년 대비 55% 증가한 1억3천만달러(약 1천415억원), 대수로는 40만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민정원 외신기자  jwmin@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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