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을 읽듯 편안한 배경 화면과 이에 얹힌 날렵한 맵시의 서체는 읽기에 관한 한 다른 단말기가 따라갈 수 없는 탁월한 '가독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불편한 조작방식과 굼뜬 반응, 무엇보다 사용자들의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콘텐츠 인프라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스마트폰 시대의 눈높이에 맞추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예스24와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 주요 3개 서점들이 협력해 지난 15일 내놓은 전자책 단말기 '크레마 카르타'는 전자출판 시장 확대를 꾀하는 우리 업계의 현주소와 서비스 방향을 집약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들 3개 서점은 전자책 사업체 한국이퍼브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기자는 지난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에 걸쳐 크레마 카르타 기종을 직접 사용하며 전자책 단말기 및 현재 서비스 수준을 살펴보고, 전문가 의견 등을 토대로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진단해 보았다.

'크레마 카르타'의 최대 소구 포인트는 선명한 화질을 갖춘 1,448X1,072 고화질(HD) 디스플레이다. 이는 아마존 킨들 보이지, 코보 등과 동일 사양이다.

종이책 인쇄 품질인 '300PPI' 고해상도와 전자잉크(e-ink) 패널의 단점으로 꼽혀온 잔상 제거 기술 '리갈 웨이브폼'을 적용해 최대한 종이책과 흡사한 느낌을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전자잉크 특유의 화면 전환시 잔상 현상을 없애진 못했지만, 상당 부분 거슬림을 완화한 기술적 개선이 돋보인다.

대각선 15cm(6인치) 크기에 182g의 무게와 8mm 두께는 휴대하기에 더욱 부담 없는 수준으로 개선이 이뤄졌다. 기출시된 전자책 단말기 중 가장 얇고 가볍다.

원터치로 화면을 비추는 '프론트 라이트' 기능은 어두운 곳에서도 별도 조명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편리성을 제공한다.

와이파이 연결을 통해 직접 온라인 장터에서 전자책 콘텐츠를 구매해 내려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기본 저장공간은 8기가바이트로, 32기가바이트까지 SD카드를 통한 확장이 가능하다.

단 출시 단말기는 최신 기가 와이파이(802.11ac)나 5G 인터넷을 통한 와이파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콘텐츠 장터는 사용자가 원하는 제휴 서점을 택해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일단 특정 서점 서비스를 택한 뒤에는 다른 서점 서비스로 이동할 수 없도록 구조화돼있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장터엔 25만종에 이르는 유료 전자책 콘텐츠와 5만종의 무료 콘텐츠가 진열돼있다. 장터 외에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공급되는 예스24와 알라딘의 전자도서관 서비스도 별도로 제공한다.

우선 검색 기능과 주요 신간, 베스트셀러 등 연결 메뉴를 노출한 장터의 초기 화면은 깔끔하다.

목록을 찾아들어가면 상품이름과 출판일, 판매량, 가격 등 원하는 순서대로 콘텐츠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단말기를 통해 통상적인 와이파이 환경에서 원하는 콘텐츠의 정보를 충분히 확인하기엔 인내력이 필요해 보인다. 터치 등 조작에 따른 화면전환 등 반응이 굼뜨고 투박하게 느껴진다. 스마트폰 이용 환경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구매도서 정보를 얻기 위한 '쇼핑'의 경우 결국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마션'과 '글자전쟁' 등 최신간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눈길을 끈다. 그러나 여전히 독자들이 원하는 '컬렉션'을 제공하지 못하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주요 출판사들이 인기 있거나 비중 있는 책들의 전자책 콘텐츠 공개를 여전히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물과 무협지 등이 여전히 전자책 시장의 주요한 소비 대상인 점은 전자책 시장의 본격적 성장을 가로막는 한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출판협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같은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이라도 '불륜'은 전자책 콘텐츠로 판매하고 다른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 등 출판사들의 '예민한' 상업적 감각이 반영되는 시장 상황"이라며 "주요 출판사들의 인식 전환이 전제되지 않는 한 전자책 시장의 본격적 도약은 어렵다"고 말했다.

전자책 가격을 바라보는 사용자나 제공업자들의 인식도 엇갈린다.

신간 단행본의 경우 종이책 가격의 70~80% 수준에 이르지만, 사용자들의 체감 적정 가격선은 신간 가격의 50% 정도라고 여러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결국 뛰어난 가독성에도 불구하고, 크레마 카르타와 같은 전자잉크 기기가 국내 시장에서 안착하기 위해선 사용자 수요에 맞는 플랫폼 환경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뛰어난 하드웨어 개발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플랫폼과의 연계를 이끌어내지 못했던 아이리버의 MP3 플레이어 사례는 물론, '시티폰'과 '옴니아폰' 등 시장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징검다리와 같은 존재로만 남은 하드웨어들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현재와 같이 얼기설기 엮은 콘텐츠 환경으로는 잔뜩 눈높이가 높아진 사용자들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없다"며 "콘텐츠를 끌어모으는 생태계 조성이 핵심이며, 주요한 사업자들이 대승적 관점에서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희 기자  jhjung2@a-news.co.kr

<저작권자 © 전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