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부산 벡스코 2전시관에 차려진 미국 '에픽게임스'의 부스. 기자는 내년 1분기에 VR 기기 '오큘러스 리프트'용으로 무료 배포되는 기대작 '로봇 리콜'을 체험했다.

"허리 쪽 권총집의 총을 잡으세요"란 회사 직원의 안내에 따라 팔찌 모양 조작기를 든 팔을 허리에 갖다 댔다.

"철컥"하며 게임 속 양 손에 권총이 쥐어지자마자 눈 앞의 로봇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불꽃과 금속 파편이 튀면서 로봇이 쓰러지는 현장감에 숨이 막혔다.

10여 분 총격전 끝에 머리에 쓴 가상현실(VR) 기기를 벗었지만, 악명 높던 'VR 멀미'는 없었다.

"장기간 플레이해도 어지럽지 않도록 화면의 움직임 같은 분야에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재미만 쫓아서 막무가내로 화면을 흔들던 초창기 VR 게임과는 전혀 다르죠." 직원이 웃었다.

게임업계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VR은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인 올해 '지스타' 최대의 관심사였다.

이 분야 선발 업체들은 무겁고 불편한 기기와 낮은 인지도 등의 난관을 조금씩 극복하고 조만간 올 VR 대중화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달 국내에서 플레이스테이션 VR(PS VR)을 발매한 소니는 'VR 특별관'을 차리고 물량공세에 나섰다. '바이오하자드7' '배트맨 아캄 VR' '파포인트' '화이트데이 스완송' 등 PS VR용 신작 10여 종을 체험용 부스에 내놔 방문객이 몰렸다.

'검과마법' 등 모바일 게임으로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한 중국계 게임사인 룽투코리아[060240]도 총격·격투 VR 게임 '파이널포스'를 선보였다.

대만계 IT(정보기술) 업체인 HTC가 만든 VR 기기인 '바이브'용 작품으로 게임 조작 체제나 디자인이 다소 거칠었지만, 모바일 게임에서 입증된 중국의 빠른 학습능력을 고려할 때 무시하기 어려운 사례였다.

에픽게임스는 지스타 현장에서 VR 게임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개발 도구인 '언리얼 엔진 4' 홍보에 발 벗고 나섰다.

언리얼 엔진은 개발에 활용할 때는 돈을 낼 필요가 없고, 게임이 출시되고 일정 액수 이상의 수익이 발생하면 이중 5%를 로열티로 걷어가는 저비용 정책을 펴고 있어 영세 게임사들에 인기가 높다.

에픽게임스 관계자는 "적은 인력으로도 부담 없이 양질의 VR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터전을 만들자는 것이 언리얼 엔진의 취지"라며 "오큘러스 리프트용 VR 게임은 모회사 페이스북의 지원 덕분에 언리얼엔진의 5% 로열티도 면제돼 게임 개발 환경이 더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VR 게임의 제작 장벽이 낮아지면서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게 되며 이에 따라 게임의 전반적인 질도 좋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넥슨·넷마블게임즈 등 국내 업체 부스에서는 반면 이런 VR 열풍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리니지 2: 레볼루션'(넷마블게임즈) 등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을 투입한 모바일 대작 게임이 오히려 초점이었다.

서강대 게임교육원의 최삼하 교수는 이와 관련해 "소니의 PS VR 등이 탁월한 신작을 내놓고 있지만, VR 게임 시장의 인프라가 아직은 미성숙해 한국 대형 게임사들로서는 참여를 망설이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내년 하반기 정도면 VR 게임 시장이 외국 업체들의 주도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크고, 그 때면 국내 주요 기업의 진출도 본격화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VR 게임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머리에 쓰는 VR 기기가 아직도 수십만 원 이상의 고가인데다가 성능이 완벽과는 거리가 멀어 시장이 소수의 마니아 고객 중심으로 굳어질 위험이 여전하다. 현재 가장 성능이 좋다는 평을 받는 바이브는 한국 출시가가 125만원에 달하며, 이에 연결할 고성능 PC도 따로 필요하다.

기껏해야 풀HD(고화질)급 안팎으로 제한된 화질, 착용의 불편함과 멀미 위험 등도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난제로 꼽힌다.

중국계 VR 장비 회사 '노이톰'(Noitom)의 알렉산더 알바레스 이사는 "프로슈머(수준이 높은 소비자)·일반인·회사 등 여러 고객층을 겨냥한 VR 제품을 내놓는 '다변화'로 초기 시장을 계속 확대하면서 대중화 해법을 계속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구표 기자  press@jeonp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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